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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타지마할, 영원한 사랑의 징표…인도

인구 14억의 거대한 나라 인도 하면 흔히들 요가, 명상, 힌두교, 카스트제도를 떠올리지만 이것들이 인도의 전부는 아니다. 아그라에는 수백 년간 아름다움을 간직해온 타지마할이 있다.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은 너무나도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이 14번째 아이를 출산하다 사망하자 이를 추모해 궁전 형식의 무덤인 타지마할을 건축했다.   타지마할은 단순히 죽은 아내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기 위해 만든 무덤이라기엔 지상 최고의 완벽미를 갖추고 있다. '이슬람 예술의 보석' '시공간을 초월한 완벽한 아름다움'이라 찬사 받는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은 물론 외국의 내로라하는 건축가와 전문 기술자들을 불러오고 무려 2만 명의 노동력을 동원해 22년간 대공사를 한 결과물이다. 물론, 어마어마한 국고를 손실하고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어두운 면은 평생 따라다닐 꼬리표지만 타지마할이 전 세계 사람들이 손꼽는 꼭 한 번쯤 보고 싶은 랜드마크임엔 틀림없다.   심지어 샤 자한은 후세에 더 이상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 중요 건축공과 기능공의 손목을 절단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이후 그 자신도 국고를 탕진했다는 이유로 둘째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아그라 성의 감옥에 유배됐다. 그 감옥은 타지마할과 지척에 위치해 있는데 샤 자한은 8년간 아내의 묘만 바라보며 살다가 숨을 거뒀다고 한다.   그 시대에도 역사적, 정치적, 예술적으로 한 획을 그은 타지마할은 후세에도 그 명성을 이어갔다. 1983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2007년에는 세계의 경이적인 문화유산 7곳(피라미드, 만리장성, 콜로세움, 파르테논 신전, 에펠탑, 타지마할) 중 하나로 선정됐다.   타지마할은 양파 돔과 4개의 첨탑, 아치형 벽감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있으며 흰 대리석 벽엔 마노, 홍옥, 백옥, 터키석 같은 아름다운 보석들이 장식돼 있다. 타지마할은 어느 방향에서 나누어도 정확한 대칭을 이룬다. 네 개의 첨탑과 거대한 정사각 정원이 수로를 따라 또 네 개로 분리되고 수로 중심에는 물이 솟아나는 인공 연못이 조성돼 있다. 또한 타지마할은 일출과 일몰, 달이 뜨는 보름 등 시간에 따라 빛깔과 자태가 변한다. 이는 주요 자재로 사용된 대리석이 빛을 투과시키거나 굴절시키는 현상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전 세계에서 모인 여행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포인트는 1992년 영국 다이애나 왕비가 앉았던 '다이애나 의자'다. 정확한 대칭을 이루는 타지마할의 정원과 분수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기 가장 좋은 장소다. 타지마할에는 두 개의 관이 있는데, 가운데 뭄타즈 마할의 관이 있고 다른 쪽에는 샤 자한의 관이 더 크게 안치되어 있다. 360도 돌면서 무덤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타지마할의 외관보다도 그 속에 숨겨진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에 더 관심을 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죽은 아내를 향한 샤 자한의 눈물겨운 세레나데야말로 타지마할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타지마할 영원 사랑 이야기 나라 인도 다이애나 왕비

2024-03-28

[글마당] 뭘 어쩌려고

이혼한 친구가 혼자 지내다 나이 들어 예전에 짝사랑했던 남자를 우연히 만났다. 싱글인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 황혼기에 만나 알콩달콩 이어지는 친구의 사랑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가슴 시렸던 옛일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짝사랑한 남자가 있었다.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난 순간 그에게 빠졌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쌍꺼풀 없는 깊고 지적인 눈, 공대생인 그는 국립극장(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할 정도로 음악도이기도 했다. 그는 나를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연상의 여자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를 잊으려고 나왔습니다.”     나는 맨날 왜 이런 사연을 가진 남자만 걸리는지! 친구들과 어울려 한 번 더 그를 만났다. 남자가 군대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끙끙 앓다가 용기 내 전화했다. 송별회로 바쁘다며 전화를 끊으려는 그에게 ‘만나고 싶다’고 간청했다.     그날따라 비는 왜 그리 억수같이 쏟아붓는지. 모처럼 새로 장만한 옷을 차려입고 종로 3가, 그가 송별회 한다는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오지 않았다. 비에 젖은 푸른색 옷이 더욱 짙어졌다. 어두운 옷 속에 묻힌 작은 몸집은 무척이나 초라했다. 그를 애타게 기다리며 ‘그냥 갈까? 더 기다릴까?’ 망설였다. 기다리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뒤늦게 나타나 바삐 가봐야 한다는 그에게 ‘군대로 편지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 사이냐?’며 그가 반문했다. 간신히 고개 들어 마주친 그의 눈은 너무도 차가웠다. 빗속에 나를 버려두고 그의 다부진 뒷모습은 송별회 한다는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비에 젖은 가로등처럼 한동안 서 있었다. 집에 돌아와 심한 몸살로 여러 날을 앓았다.   단지 그와의 인연은 그것뿐인데 비에 젖은 내 초라함. 그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내뱉은 그의 짧은 한마디가 가슴에 각인되었다. 그의 성이 한 씨였나? 권 씨였나? 기억나지 않는다.     헛웃음 나오는 상상이지만, 나는 언젠가 우연히 만날지도 모를 짝사랑했던 남자들이 내 모습에 실망하지 않도록 가는 허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만난다 해도 뭘 어쩌려고! 내 기억엔 그 빗속의 처량함이 뼈에 사무치게 선명하지만, 그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도 못할 텐데. 그나저나 늙은이 치아 빠지듯 슬금슬금 사라지는 주변의 옛 지인들처럼 그가 아직도 살아나 있을지도 모를 나이다.     괜스레 남의 사랑 이야기를 듣다가 주책스럽게. 못 말리는 나의 짝사랑 타령을 하다니. 늘어진 팔자에 살만한 모양이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짝사랑 타령 사랑 이야기 바이올린 연주

2023-11-03

[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닥치고 기다려라

‘시네마 천국’이라는 영화 속에는 어느 공주와 병사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 속에서 영사기를 돌리는 알프레도가 주인공 토토에게 들려주는 사랑이야기다.   ‘어느 공주를 보고 호위병사는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병사는 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공주는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100일동안 공주의 방 발코니 아래에서 매일 공주를 기다린다면 병사와 결혼하겠노라고 약속한다. 병사는 공주의 방 발코니 아래로 달려간다. 그날부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병사는 공주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99일째가 되었다. 하루만 더 기다리면 공주와 약속한 100일째가 된다. 하지만 병사는 단 하루를 남겨놓고 홀연히 그 자리를 떠나 버린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야기를 전해주는 알프레도는 병사가 떠난 이유를 자신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니 나중에 토토가 알게 되면 좀 알려달라고 한다.     1988년에 내가 본 극장판에서, 영화는 병사가 떠난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하지만 훗날 찾아본 감독판에서 토토는 자기가 알아낸 이유를 말한다. “처음부터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다. 99일동안 병사는 희망을 가지고 사랑을 기다릴 수 있었지만, 100일째가 되어 공주가 약속을 지킬 수 없다면, 병사는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미리 떠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1988년 당시 감독판을 보지 못했던 나는 다르게 해석했다. 병사가 90일을 넘게 기다리는 동안 그는 잠도 못 자고 지쳐갔다. 하지만, 공주는 매일 창밖을 바라보면서도 병사에게 물 한모금 가져다 주지 않는다. 짝사랑을 잘못하면 스토커가 된다. 나는 병사가 공주의 이기심에 자신의 사랑을 접고 떠났다고 해석했다.       ‘천년이 가도 난 너를 잊을 수 없어. 사랑했기 때문에’라는 노래구절이 있다. 제목은 “천년의 사랑”이다. 거짓말이다. 아무도 천년을 기다릴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상대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 모습도 변하지만, 생각이 변한다. 하지만, 우리는 진정으로 믿을 수만 있다면 평생을 기다릴 수 있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든, 사건이든, 확실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평생을 기다릴 수 있다. 병사는 공주를 믿지 못했다.   성공한 많은 투자자들이 말한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라고 말이다. 어떤 종목을, 언제 살 지, 신중하게 기다려야 한다고 말이다. 많은 투자자들이 손이 근질거려서 아무 때고 덤벼들어서 아무거나 사버린다. 그리고는 후회를 한다. ‘조금 더 기다릴 걸’ 하고 말이다. 하지만 더 어려운 기다림은 투자하고 난 후에 찾아 온다. 자신이 투자한 종목은 어김없이 곤두박질 치기 때문이다. 자신의 종목만 떨어지든, 아니면, 시장이 전부 좋지 않든, 우리는 대부분 투자한 후에 손해를 본다. 이때, 과연 누가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 지가 승부처다. 많은 사람들이 빌린 돈으로 투자를 한다. 이런 경우에는 이자부담이 커서 어쩔 수없이 손실을 안고 매각한다. 손절하는 것이다. 투자실패다. 엄청난 손실을 보았을 때 버틸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시장은 언젠가 반등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기다리지 못한다. 돈 쓸 곳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기다림은 아직 오지 않았다. 투자한 금액이 손실을 만회하고 어느 정도 회복한 후에 진정한 ‘기다림’의 시험이 닥친다. 손실을 만회하자마자 대부분의 투자자는 재빨리 팔아 치운다. 손해를 봤던 기간이 길면 길수록 회복과 동시에 더 빨리 팔아 치운다. 만회한 후에 최대한 이익을 실현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진정한 승자를 가리는 승부처다. 저렇게 많은 시중의 투자서적들이 하고 싶어하는 단 한마디는 이렇다. “닥치고 기다려라.” 그렇다. ‘나는 너를 평생 기다릴 수 있다. 믿기 때문에.’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사랑 이야기 99일동안 병사 100일동안 공주

2023-10-19

80년 전 러브레터에 담은 애틋한 사랑…영어·일본어 섞어 쓴 75통 편지

  한반도의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거쳐 미국까지 사랑을 이어온 두 한인 남녀의 80년 된 러브레터가 발견돼 화제다.     지난 2018년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손녀 자넷 곽(40·샌디에이고)씨는 옷장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박스 하나를 열어보고선 깜짝 놀랐다. 내용물은 노랗게 빛바랜 편지 75통.     대부분이 30여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연애 시절 할머니에게 보낸 연애편지들이었다.     곽씨는 그 시절 할아버지 곽종기씨와 할머니 정영숙씨의 사랑 이야기의 발자취를 찾아 지난 8일부터 오는 22일까지 한국을 방문 중이다.   곽씨는 “자유를 억압받던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시절에도 사랑을 나누며 서로에게 위안과 희망이 되었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는 모두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 생각했고, 더 알고 싶어져 남동생과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구에 살며 1928년생 옆집 사는 동갑내기 친구로 만나 연인이 된 곽씨의 조부모는 할아버지가 서울대학교로 진학해 서로 떨어지게 되면서 편지를 주고받았다. 1943년에 시작된 연애편지는 그 뒤로 무려 10년이나 이어졌다.   당시는 황민화 정책이 추진되며 자유가 억압받던 시기였다. 경북여고를 다녔던 할머니는 총동원 체제 때 강제 동원돼 근로 활동을 해야 했다.     또 언어가 통제된 탓에 할아버지의 편지도 대부분 일본어로 쓰였다. 하지만 편지 속 한국의 서정적 정서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곽씨는 “할아버지는 당대 한국의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인용해 할머니에게 사랑 고백을 전하는 로맨티스트셨다”며 “미군정 시기에 들어서부터는 편지의 서두는 항상 ‘To my darling(내 사랑에게)’로 시작했고 ‘You’re my sunshine, you're my higher love(당신은 나의 햇살, 당신은 나의 높은 사랑)’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셨다. 편지들을 발견한 후에 한자와 일본어가 많아 해석 도움을 받고자 SNS에 올렸는데 많은 분이 할아버지의 낭만적인 시적 표현들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름다운 내용도 많지만, 당시 위태로웠던 시대적 상황도 적나라하게 담겼다. 북한이 서울을 침공했을 때 할아버지는 아는 사람을 통해 어렵게 편지를 전달하며 급박한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현실에 불안해하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대구 집에 있던 감나무 얘기를 자주 하시며 함께 꾸려나갈 밝은 미래를 약속하셨다”고 말했다.     결국 둘의 사랑은 할아버지가 대학을 졸업한 후 대구에 돌아가 할머니와 결혼을 하면서 결실을 보았다.     두 아들을 낳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후 1989~1990년쯤 둘째 아들인 곽씨의 아버지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왔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할아버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곽씨는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두 분이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운 이야기는 미래를 살아갈 자식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준다”며 “아무래도 한인 2세들에게 이런 시대적 어려움을 극복한 사랑 이야기는 생소하다. 요즘 K팝 등 한류가 널리 퍼지고 있는데 이렇게 당시 시대상과 역사가 담긴 러브스토리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한국을 다녀와 갤러리 전시나 책 출판 등을 고려 중이다”고 말했다.   남동생과 한국을 방문 중인 곽씨는 현재 경북대학교 김경남 사학과 교수와 함께 과거 할아버지·할아버지 자택과 편지 속 나오는 장소들을 방문 중이다. 일본강점기 때 주소이기 때문에 현재 주소를 찾기 위해서는 해당 관할지 중구청의 협조가 필요해 김 교수가 이를 돕고 있다.   김경남 교수는 “학술적으로 봤을 때 역사학과 기록학에서 일제강점기 학생들의 일상사라는 관점과 재미동포 역사의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을 거 같다”며 “자넷씨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기록을 소중히 남겨 놓았던 것처럼 그 기록을 남겨놓으면 후손들은 그것을 보고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수아 기자 jang.suah@koreadaily.com일본 러브레터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 이야기 시절 할아버지

2023-10-12

놀라운 연기로 표현한 '사랑은 본질에 앞선다'

B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45위에 랭크된 튀니지계 프랑스 감독 압델라티프케시(Abdellatif Kechiche)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공개되자마자 파격적인 성 묘사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마주친 여자와 주고받은 눈길, 그 우연이 인연이 되어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성 정체성의 혼돈기를 겪으면서 그 사랑을 잃어버려야 했던,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한 소녀의 성장기 영화.     현실을 넘어 환상을 직조해내는 사랑 이야기, 그 사랑의 처음과 끝을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의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Blue is the Warmest Color)는 개봉 해인 2013년 칸영화제에서 이례적인 기록을 세운다.     감독에게만 수여되는 황금종려상의 전례를 깨고 2명의 여자 배우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한다. 두 배우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영화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영화 한 편으로 세계적 스타 반열에 오른 레아 세두(Lea Seydoux, 007 노 타임 투 다이)와 아델 엑사르코풀로스(AdeleExarchopoulos, 패시지스)가 그들이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에로틱 레즈비언 퀴어무비로 구분되는 영화, 그러나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동성애의 미화가 결코 아니다.     영화는 동성애 그 자체보다 3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 내내 아델의 내면을 따라가는 형식 안에서, 청소년기로 접어드는 감수성 예민한 17세 소녀의 사랑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건들에 더욱 집중한다.     순진한 소녀의 청순미에 소피 마르소의 관능미를 입힌 것 같은 느낌의 연기 초년생 엑사르코풀로스(당시 19세)는 사랑이 초래하는 그 모든 고통을 아프게 연기해 낸다.     사랑에 눈을 뜨면서 성을 체험하고 동성애의 본능을 느끼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혼란스러운 감정들. 관객들은 그녀의 클로즈업된 얼굴과 생생한 표정 연기에 감탄을 보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던 아델은 우연히 파란 머리의 엠마를 만나면서 이전에 몰랐던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     미성숙한 아델을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엠마, 그러나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는 둘은 결국 연인이 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하는 엠마, 오르가즘은 본질에 앞선다고 응수하는 아델. 둘은 바로 섹스를 나눈다.     아델은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숨기지 않는, 침착하고 냉정하며 총명한 엠마를 공부를 도와주는 선배로 소개할 뿐, 연인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엠마와 함께 살면서 아델은 엠마의 파란 색에 거침없이 물들어 버린다. 사랑에 파랗게 물든 소녀, 그러나 생리를 이유로 잠자리를 거부하는 엠마에게서 아델은 불안을 느낀다. 아델은 유치원 동료 교사(남자)와 데이트를 한다. 집 앞에서 아델을 기다리던 엠마는 남자와 키스를 나누는 아델을 본 후, 배신감을 느끼고 변명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아델을 내쫓아버린다.   시간을 뛰어넘어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델은 외로움과 고독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엠마와 헤어진 후 슬픔을 삭이며 살아야 했다. 엠마의 대한 그리움으로 그녀의 삶은 여전히 슬프고 우울하다. 그녀는 외롭게 홀로 남아 있다.     어떤 이유이건 사랑은 끌림에서 시작된다. 아델에게 엠마는 첫사랑이다. 그녀는 엠마를 알기 전, 남자들과 캐주얼한 관계를 나눈다. 아직 이성관이 들어서기도 전에 엠마에게 빠져들고 그래서 모든 걸 잃어버리고 마는 불행을 초래했다.     아델과 엠마는 몇 년 후 카페에서 다시 만난다. 둘은 이별을 한 사이임에도 상대방을 향한 열정이나 성적 욕구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확인한다. 엠마는 아델에게 말한다.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지만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엠마의 그림 전시회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아델은 엠마의 그림 속 모델이 자신이라는 사실, 엠마가 자신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성숙의 창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무너져버린 아델의 첫사랑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     아델이 엠마의 파란 머리칼을 처음 봤을 때부터 아델에게 블루는 엠마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의 색이 차가움을 상징하는 색 블루라 할지라도 그녀는 본질과 다른 따뜻함을 느낀다.     사르트르의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는 말, 엠마의 대사이기도 했던, 이 말에 영화의 역설이 담겨 있다. 엠마와 함께 하는 동안 아델은 행복했다. 사랑이 고독을 잠시 가리고 있었을 뿐. 그래서 사랑의 속성은 원래 푸르다. 고독은 어쩌다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김정 영화평론가연기 표현 이유이건 사랑 사랑 이야기 엠마 오르가즘

2023-08-18

[아름다운 우리말] 왜 에세이를 읽어야 할까?

에세이는 배우고 쓰는 것보다 ‘읽기’가 우리 곁에 가깝습니다. 물론 성인 1인이 1년간 읽는 책을 생각해 보면 곁에 있다는 말의 참담함도 느낄 겁니다. 정보나 지식, 지혜를 받아들이는 창구가 예전보다 다양해지고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책이 역할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얕게 쌓여가는 지식 속에서 ‘깊게’ 읽기는 더 빛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글은 어떻게 우리 앞에 남게 되었을까요? 글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읽기의 이유가 좀 더 명확해집니다. 문자의 시작은 아마도 계약, 약속에 있었을 겁니다. 모든 것이 기억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증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믿는 사람끼리는 계약서나 각서는 안 씁니다.     그래서일까요? 한자를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진 창힐은 글자가 생기면 속이는 일이 생길 것을 우려하였다고 합니다. 글자가 있으면 속이지 못할 것 같지만, 글자를 고쳐 속이는 일이 생길 수 있었던 겁니다. 위조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글자는 말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고쳐질 위험이 있습니다. 예전 성인들이 직접 글을 남기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글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초창기의 글은 주로 노래가 많습니다. 노래의 내용은 신에 대한 제사나 사랑 이야기가 많습니다. 나약한 인간임을 깨닫는 순간 하늘을 우러러 노래를 부르고, 사랑하며 사는 사람임을 깨닫는 순간 사랑을 노래하였을 겁니다.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왔으나 글이 생기고 나서는 노래부터 글이 됩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펴낸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이 노래입니다. 향가도 고려가요도 시조도 가사도 다 노래였습니다. 무속신화나 설화 등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노래가 시작이었을 겁니다.     초창기의 글에는 대화가 많습니다. 희곡도 사실은 모두 대화입니다. 예전의 이야기는 우리 삶을 반영하였기에 대화가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화가 꽃이 핀 것은 성인의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주요 경전에는 수많은 대화가 담겨있습니다. 여시아문으로 시작하거나, 공자 왈로 시작하고, 예수 가라사대로 이야기가 풀어집니다. 소크라테스의 글은 아예 ‘대화’나 ‘변명’이라는 이름을 담습니다.   대화의 주요특징은 상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로는 제자와 대화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연히 이해하기 쉬운 말이 기본입니다. 일부러 어렵게 설명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설명이 쉽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활용하는 것이 바로 비유입니다. 비유는 일부러 꼬아놓는 기법이 아닙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세계를 보여주는 수식입니다. 비유는 글 이전의 세계를 담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유 때문에 글이 어려워졌다면 그 글에는 문제가 있는 겁니다.   볼 수 없는 대상에게 쓴 글은 주로 편지였습니다. 초창기의 글은 편지이거나 편지 형식을 띤 글이 많습니다. 편지를 보내고 나면 자신에게 글이 남지 않기에 한장 더 써서 보관하곤 했습니다. 그런 글이 모여서 책이 되기도 했습니다. 편지글도 상대가 있는 글이기에 이해 가능한 글이어야 합니다. 물론 상대에 따라 글의 수준이 달라지기는 했을 겁니다. 옛 경전에도 다양한 많은 편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글의 대상이 불특정 다수로 넓어졌습니다. 공자님 시절에 읽어야 할 책과 현재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은 종류와 범위가 다릅니다. 그러기에 다양한 에세이 읽기는 세상을 보는 눈과 힘을 마련해 줍니다. 에세이는 늘 기쁘게 읽는 글입니다. 내 시각의 각도를 넓혀주기 때문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에세이 에세이 읽기 사랑 이야기 예전 성인들

2023-03-12

[문장으록 읽는 책]

 인류 최초의 이야기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인류에 남아 있는 이야기 중 가장 오래된 이야기의 중심축이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랑 이야기가 인류 최초의 서사일 것이라 짐작한 나의 사고방식도 어쩌면 로맨틱 러브 중심의 현대적 분위기에 물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목숨까지 바칠 만한 격정적인 사랑이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서양에서는 아벨라와 엘로이즈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유행했던 12세기경이니, 인류 역사 전체에서 사랑이 이토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 셈이다.     황광수·정여울 『마지막 왈츠』   1944년생 황광수와 1976년생 정여울. 두 문학평론가가 나눈 문학적 교감과 우정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44년생 황광수와 76년생 정여울은 어떻게 이토록 절친한 벗이 되었을까요. 우리 사이엔 아무런 실용적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우리의 우정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었으니까요.” 단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직감적으로 서로의 눈빛을 알아보았지요. 우리 두 사람 모두 ‘같은 대상’을 향해 미쳐 있음을. 그것은 ‘문학’이었습니다.”   정여울은 서문에서 “인류는 끊임없이 적이 될 수도 있는 타인을 친구로 만들며 세파를 견디고 변화에 적응해 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썼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록 읽는 책 사랑 이야기 길가메시 서사시 인류 역사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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